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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일에 관하여

식탁의 얼굴



요즘 음식의 존재는 놀이에 가깝다. SNS만 봐도 눈이 배부르다. 맛은 상상에 맡기고 손가락으로는 하트를 보낸다. 이 놀이에 궁극의 끝은 없는 듯하다. 새로운 음식과 식탁이 밀려들고 또 밀려든다. 최초의 욕망이고, 생존이고, 일상이고, 나아가 즐거움인 먹기는 언제나 작은 액정 안에 있다.


언제부턴가 먹는 일이 즐겁지 않게 되었다. 처음엔 나이 들었나 싶었다. 그래봐야 30대가 까분다 할 사람도 있겠지만,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남의 입에 들어가는 걸 보기가 더 좋아졌으니까 라는 변명을 해본다. 먹기가 즐겁던 때도 있었다. 지금 먹으면서도 다음 먹을 걸 생각했고, 약속을 잡으면 그날 가봐야 할 맛집 루트 짜기도 좋아했다. 홍대나 이태원 근처에 새로 생긴 음식점, 카페는 꼭 한 번 가봐야 했다. 자취할 때도 결혼 생활에도 먹고 싶은 걸 요리했고, 맛있으면 맛있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곧잘 먹었다. 달거나 짜거나 기름진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풀려고 먹었지, 먹는 게 스트레스는 아니었다. 그런 날이 올 줄은 생각도 안 해봤다.


먹는 일이 스트레스가 된 첫 순간은 임신성 당뇨 판정을 받은 날이다. 임신 중기, 한여름, 지하철 안이었는데, 혈당 수치가 200을 찍었으니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라는 주치의의 전화가 걸려왔다. 친구와 만나 밥 먹자고 홍대 유명 튀김집으로 나가던 길이었다. 입덧이 끝난 지 얼마 안 되어 그나마 좀 챙겨먹기가 가능한 시기였는데, 그런 통보를 받았다. 최후의 만찬이라 생각하고 그날 먹은 튀김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아무 맛도 안 났다. 이런 음식 먹으면 안 되는데, 아기한테 안 좋을 텐데, 죄책감에 종이죽을 씹는 듯했다.


그날부터 식탁이 반갑지 않았다. 매 식사마다 정해진 범위의 음식만 먹고, 바늘로 손가락을 찔러서 나오는 숫자로 성적을 확인해야 했다. 혈당이 일정 수치를 넘으면 안 됐다. 먹고 싶은 것투성이였지만 모두 그림의 떡이었다. 밥은 주먹만큼 먹었고, 원래 과일은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 기간만큼은 하루 한 번 간식으로 먹는 사과 1/4쪽이 소중했다. 흔히 칼로리 폭탄이라는 표현을 쓸 만한 음식은 못 먹었다. 그런데도 수치는 늘 아슬아슬했지만, 인슐린을 쓰지 않고도 출산까지 관리는 그럭저럭 했다. 출산하면 보통은 대사가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하니까, 아기만 나오면 먹고 싶은 대로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거야 생각하며 출산만 기다렸다. 나쁜 엄마라 해도 좋으니, 어쩌면 아기보다 음식의 자유를 더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태어난 아기는 다행히 건강했고, 내 혈당 수치도 거짓말처럼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뭐든지 원하는 만큼 먹어도 좋다는 몸의 공식적인 허락이었다. 그러나 식탁에 다른 방해꾼이 찾아왔다. 시간이었다. 그 전에는 몰랐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내가 먹고 싶은 때에,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들여서,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다는 게 상당한 특권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아기 먹이기가 우선이었다. 아기가 배고파하면 모유수유를 위해 나는 아기의 식탁이 되어야 했다. 우리의 새 식구는 아직 타이밍이라는 걸 모르기에, 그걸 아는 내가 시간을 양보해야 했다. 식사라는 말보단 끼니, 먹는다 보다는 때운다가 더 잘 어울리는 날들이었다. 그리고 알게 된 또 하나는, 잘 자고, 적당한 기운도 있어야 먹기도 즐겁다는 단순한 사실이었다. 모유수유 기간 잠은 사치다. 비몽사몽간에 짬이 났을 때나 입에 넣는 무언가는 밥이라고 부르기도 뭐했다. 연료에 가까웠다. 먹고, 에너지로 교환해, 아기를 돌보고, 수유하는데 필요한 수단, 그리고 의무였다. 즐거울 리가 없었다.

 

아기의 이유식이 시작되면 나의 기호도 식탁에서 지워졌다.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과 체력, 몇 가지 요리를 한 번에 할 수는 없으니까, 양념이나 간을 아이의 기준에 맞추게 된다. 짭짤한 음식을 좋아하던 나는, 간이 거의 없는 음식에 익숙해졌다. 그쯤 되니 먹고 싶은 게 뭔지도 가물가물했다. 그저 30분 정도, 편안하고 조용한 곳에서 중간에 자리 뜨지 않고 느긋하게 밥 먹을 수 있다면 그걸로 좋겠다. 그게 욕망의 최선이었다. 먹을 것보다, 중단당하지 않는 시간이 더 절실했다.

 

아기가 태어나고 한동안 독서는 불가능했다, 입에 넣는 음식과도 사이가 나빠졌는데, 마음의 양식이라니 어림도 없었다. 당연히 먼 곳으로의 외출도 쉽지 않았는데, 언젠가 한참 만에 방문한 대형 서점에서 꽤 충격을 받았다. 신간에 모르는 책들로만 가득한 풍경은 거의 공포였다. 외식도 비슷한 두려움이었다. 아기가 드디어 혼자 앉을 수 있게 되었을 때 외식을 시도했다. 하지만 장시간 고립되어 있던 사람에겐 빽빽한 메뉴에서 음식 고르기조차 낯선 일이 되었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아이를 커버해가며 무언가 먹는 일은 식사가 아닌 도전이었다. 그때의 외식은 단순히 비용을 지불하고 남이 해준 음식을 먹는 일이 아니라, 낯선 사회에 던져지는 일이었다. 지금껏 모르던 식탁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나는 한동안 외식을 포기했다. 아이는 매일 곱게 채워지는데, 나는 점점 비어갔다.

 

아기는 아이로 자라났다. 치아도, 말과 키도 더 자라고 우리와 비슷한 음식을 먹게 되면서, 아이에겐 한 가지 재능이 생겼는데 음식을 만드는 데 기다림이 필요함을 알게 되었다. 내가 싱크대 앞에서 채소를 썰고, 냄비에 국을 끓이는 동안에는 다른 걸로 보채거나 떼쓰지 않고 아이는 제 할 일을 하며 놀았다. 덕분에 언제부턴가 재료를 씻고, 손질하고, 불앞에 서서 볶고, 굽고, 끓이는 동안 집중하면서 흐트러짐 없이 음식 만들기가 가능해졌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무언가 해내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참 오랜만이었다.


재료가 음식이 되는 과정을 손끝 코끝으로 매순간 느꼈다. 시작부터 맺음까지 내가 모든 흐름을 알고,  방해 없이 계획하고 몰입하고 움직이고 완성하는 시간. 그리고 기다려주는 아이. 그러자 만드는 일이 즐거워졌다. 음식을 향한 최고의 감각은 혀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먹는 일은 다른 식구들에게 양보해도 괜찮았다. 나의 하루를 들인 음식을 먹고 맛있다 해주는 아이와 배우자의 짧은 한 마디가 내겐 음식보다 맛있고, 고마웠다. 멀어진 식탁과의 드디어 어설픈 화해가 찾아왔다.

 

나도 종종 음식을 사진에 담아 SNS에 올린다. 이미지 한 장에 내가 들인 시간을 기록하고 싶은 작은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육아중이니 많은 자유는 누릴 수 없는 지금도, 먹는 일의 온전한 즐거움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기다려본다. 먹기가 주던 풍성한 감각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고, 살아가는 한 음식은 떼어놓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 중심이 언제나 즐거움이어야한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일상이 즐거움에서 즐거움으로만 이어져있지 않듯이. 그리고 가끔 상상한다. 언젠가 나와 비슷한 키로 자란 아이와 마주 앉아 긴 식사를 하는 날을. 그땐 또 식탁의 새 얼굴을 알게 되겠지.


- 2017년 늦은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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