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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와 페미니즘 _ 고양이의 보은

지브리와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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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4. 고양이의 보은 (the cat returns, 2002)

_모리타 히로유키



<고양이의 보은>을 본 첫 소감은 사실 '정신 사납도록 황당한 이야기' 였다. 작화 스타일도 기존에 보아온 미야자키 하야오 연출작과는 상당히 달라서 어색하기도 했고. 사랑스러운 엔딩 테마와 함께 흘러가는 자막을 모두 보고 난 다음에도 '그래서 결론적으로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던 거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지금도 여전히 전체적으로 매끈한 구성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몇 번 보고 나니 <고양이의 보은>이 말하는 의도 한 가지 정도는 알 것 같았다. 바로 이 대사 때문이다 - 어떻게 하면 너의 시간을 살아갈지 생각해.

<고양이의 보은>에 인간은 몇 나오지 않는다. 대사와 함께 약간의 역할이 있는 인간들은 주인공인 하루, 하루의 엄마, 그리고 친구 히로미. 이 세 사람이다. 그리고 나머지 캐릭터의 다수가 고양이라서 페미니즘에 직접대입하기엔 억지스러울 지도 모른다. 차라리 페미니즘보다 성장에 더 가까운 주제로 보는 게 맞지만, 동화 속 왕자님과의 결혼이라는 소재를 비틀어 표현한 그 재치를 페미니즘에 충분히 끼워줘도 될 것 같아서, 내 마음대로 포함시켜 봤다. 


1. 하루



주인공 하루는 순정 만화에서 흔히 보는 여고생 캐릭터처럼 등장한다. 학교 남자 선배를 짝사랑하고, 그 선배는 이미 그럴듯한 여자친구가 있고, 부럽지만 할 수 있는 건 없고, 내 남자가 될 가능성도 없어 보이고. 외모에 자신감도 없고 좀 덜렁대는 '나는 평범해' 설정. 그런 여주인공이 보통은 나중에 '이케맨' 내지는 '왕자'를 얻는 구조가 일반적인 순정 만화라면, <고양이의 보은>은 그 설정에서 거꾸로 간다.  <고양이의 보은>의 출발은, '왕자고 뭐고 결혼하고 싶지 않아!'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왕자가 고양이라는 함정은 있다. 

어느 날, 하루는 하교길에 차에 치일뻔 한 고양이를 구해주고, 그날 이후로 고양이들의 일방적인 은혜갚기(보은)가 시작된다. 하루가 살려준 그 고양이는 고양이 왕국의 '룬' 왕자. 비록 서로 다른 종(種)이지만 왕자의 생명을 구해낸 여성이니, 고양이 왕국의 왕은 하루와 왕자를 결혼시키려고 한다. 하루는 당연히 이 어처구니 없는 계획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양이와 얽힌 문제를 해결해주는 정체 불명의 '고양이 사무소'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하루는 그곳에서 두 고양이를 만난다. 멋쟁이 고양이 바론과 심술맞은 고양이 무타. 그리고 그들의 친구 까마귀 토토. 이 셋이 하루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기로 하고, 하루는 이들에게 '님'이라는 호칭까지 깍듯하게 붙이며 도움을 기대한다. 그렇게 사건을 의뢰하는 하루에게 바론이 하는 말이 '어떻게 하면 너의 시간을 살아갈지 생각해'이다. 이 관념적인 대사는 '왕자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에 대한 대답으로는 그야말로 뜬금없다. 여기까진 그렇다.



어쨌든 결국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느슨한 플롯으로) 하루는 고양이 왕국으로 납치당하고, 그곳에서 점점 인간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외모도 말투도 고양이화 되어간다. 스스로의 변화를 반쯤 자포자기한 하루를 드디어 탈출시키려 나타난 바론. 그야말로 진짜 왕자님 같은 등장에 하루는 '그냥 이대로 고양이가 되어도 좋을지도.'라며 넋을 잃는다. 그런 하루에게 바론이 다시 말한다 '어떻게 하면 너의 시간을 살아갈지 생각해'. 여전히 뜬금없지만 그 순간은 바론의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려온다. '비록 모든 상황은 엉망진창이 되었지만, 네 자신을 잃어버리지 마.' 라는 의미로.

(역시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느슨한 플롯으로) 하루는 바론과 무타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한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단짝 친구 히로미가 말한다. 네가 짝사랑하던 그 선배,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하지만 하루는 웃으며 대답한다.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왕자와의 결혼도 이케맨과의 어떤 썸도 없이 늘 비슷한 오늘이지만, 누구에게도 휘둘리지 않는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고양이의 보은>의 결말이 된다.


2. 엄마

 


지브리 애니메이션에서 엄마들의 캐릭터는 놀라울 정도로 정형화되어있지 '않'다. 대체로 도덕적 오류가 없는 한에서 자유분방하고, 한편으로는 무책임해 보이는 캐릭터도 꽤 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연출자의 가치 판단은 없다. 즉  엄마라는 캐릭터도 모성 숭배 없는 하나의 인격으로만 존재한다. 

하루의 엄마는 아마도 퀼트 공예가인것 같은데, 자신의 일에 몰두해 딸의 말을 건성으로 듣거나, 아침에 딸보다 늦잠을 자거나 하는 등의 모습도 자연스레 그린다. 사춘기 딸의 고민에 대한 관심(또는 간섭)을 보이는 보호자이기 보다, 그저 한 지붕 아래서 살아가는 다른 연령대의 다른 여성의 모습일 뿐이다. (고양이의 보은에는 하루의 아빠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다) 극의 초반 하루는 푸념하듯 '엄마 맞아?' 라는 말도 하지만, 모든 모험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자신이 엄마를 위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극중 하루 엄마의 이름 없음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고양이의 보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 자신의 시간'이다. 누군가의 신부, 누군가의 여자 친구,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네 자신'. 단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면 '이기적이지 않은 네 자신' 정도가 아닐까. 서로 다르지만 조금씩 이해하며, 공존해나가는 방식. 미야자키 하야오의 연출작들과는 약간 다른 스타일이지만, 지브리의 그 노선에서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고양이의 보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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