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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와 페미니즘 _ 벼랑위의 포뇨

지브리와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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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3. 벼랑 위의 포뇨(Ponyo, 2008)

_미야자키 하야오



<포뇨> 이전 지브리의 작품 세계는 유아 관객과 가깝지 않은 거리가 있었다. 시대, 인간 관계, 환경에 관한 이해 - 유아들이라고 그런 이해와 완전히 동떨어져 살아가는 건 아니나 - 가 앞서야 충분히 소화 가능한 이야기가 많았다. 작품을 텍스트로 놓고 그 안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과 은유를 구체적으로 읽어나가는 재미는, 보통 어른의 것이기도 하니까. 그렇다고 지브리가 유아 관객을 위해 <포뇨>에서 그런 부분을 포기했느냐 하면 그렇진 않은 듯 하다. 동화 '인어 공주'에 재난 내러티브와 판타지를 더한 <포뇨>는 그리 쉽지는 않다.

하지만 다섯 살짜리 관객인 우리집 꼬마는 <포뇨>를 그저 즐겁게 보았다. 꼬마는 이야기의 매듭이 얼마나 정교한지, 얼마나 말이 되는지는 보지 않았다. 꼬마에게 중요한 건 포뇨와 소스케가 다섯 살인 것, 포뇨가 소스케를 좋아하고, 소스케가 포뇨를 좋아한다는 것. 아이들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 같이 걷고, 껴안고, 꼬마와 다르지 않은 짧은 유아어를 하는 것. 어설픈 개연성을 도대체 견딜 수 없는 어른과는 달리, 자신과 닮은 말과 몸짓을 하는 두 주인공만으로도 꼬마는 <포뇨>를 즐겼다. 

이제 소개할 <포뇨>의 여성들의 이야기는 '좀 더 단순하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풀었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어른의 넋두리가 될 것 같다. 언뜻 먼저 화면에 등장하는 소스케가 주인공인 듯해도, 결국 <포뇨>의 세계를 움직이는 이들은 여성이다. 그리고 <포뇨>에 나오는 여성들에겐 엄마, 할머니, 아줌마로 범주화되지 않은 각각의 고유한 이름이 주어진다.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1. 포뇨



<포뇨>는 인어 공주를 모티프로 하여 거기에 재난 영화 플롯을 더하고, 포뇨 가정사와 얽힌 판타지까지 뒤섞어 그야말로 복잡난해하다. 결과적으로 매끈한 내러티브라곤 못 하겠지만 '인어 공주'라는 캐릭터로만 놓고 보았을 때, 많은 제약과 억압 속에 있는 인어공주와 달리 모든 것을 뒤엎고 달려나가는 포뇨의 능동적인 모습은 사랑스럽고 씩씩해서 속이 시원할 정도다.

캐릭터만 간단히 비교해도 많은 차이가 있다. 포뇨는 다섯 살, 인어공주는 아마도 16세 이상. 벼랑 위 집에 사는 동갑내기 소스케를, 성에 사는 왕자님을 만나러 바다를 떠나 각각 육지로 간다. 포뇨는 인간이 되겠다고 가부장제에 반기를 들고서, 자매들의 도움을 얻어 바다에 구멍을 뚫어 재앙을 일으키면서까지 소스케를 만나러 간다. 반면에 인어공주는 아버지 모르게 집을 나와 마녀에게 목소리를 팔고 왕자를 만나러 간다. 

포뇨는 말한다. "소스케 좋아!" "소스케한테 갈래." "소스케한테 왔다!" "소스케 냄새가 나" 좋아하는 대상의 이름을 끊임 없이 부르는 애정 공세가 한없이 펼쳐진다. 목소리를 잃은 인어 공주와의 가장 큰 차이다. 현재로서는 시대착오적이기만 한 무력한 공주님을, <포뇨>에서는 철 없는 다섯 살 아이 캐릭터의 힘을 빌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행동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반추하게 된다. '목소리 없는 여성'이라니, 예전 동화 속의 그녀는 얼마나 잔혹한 위치에 있었는지.


2. 리사



소스케를 키우며 양로원에서 일하는 엄마 리사. 아슬아슬한 운전 실력을 과시하거나, 아이들만 집에 두고 먼 길을 가는 일 등 양육 방식에 동의할 수 없는 지점들도 있지만, 다섯 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배 타는 남편을 두고, 때때로 현관 앞까지 바닷물이 차오르는 일상을 산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리사의 남편 코이치는 큰 배의 선장인데, 한 가지 재밌는건 포뇨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 부부는 모스 부호로 한 번 통신만 주고 받을 뿐, 함께 있지는 않는다. 

코이치는 바다에서 재난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마을 사람들을 돕는다. 이 둘은 자신의 가정을 지키려는 부모로서의 역할만 하지 않고, 서로 물리적인 도움 없이 (물론 정신적인 유대감은 존재) 각자가 있는 곳에서 주변의 이웃들을 돕는다. 이런 움직임은 굉장히 이상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이기도 한데, 아무래도 재난에 대한 대처와 반응이 우리와는 다른 일본이라 받아들여지는 정서인 것 같다. 게다가 포뇨가 일으킨 해일 때문에 중간에는 통신마저 두절되어 코이치는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다. 

마을에 엄청난 재난이 일어나고 난 뒤에도 리사와 소스케를 위해 코이치가 하는 일은 없다. 리사는 할머니들이 걱정되어 아이들을 두고 다시 양로원으로 떠나고,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직접 나서 그랑망마레와 대면한다. 


3. 그랑망마레


그랑망마레는 바다의 여신인 포뇨의 엄마다. <포뇨>의 데우스엑스마키나로 사실 극 상의 모든 긴장감을 놓아버리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어쨌든 인간의 모습을 한 포뇨의 아빠(후지모토)와는 달리, '여신'인 이 캐릭터에게 포뇨의 운명도, 바다의 운명도 절대적으로 맡겨져 있다. 즉, 이야기의 결론을 쥐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이다.

<포뇨>에서는 사건을 일으키는 것도 → 포뇨, 그것을 중재하는 것도 → 리사, 운명을 결정하는 것도 → 그랑망마레, 모두 여성에 의해서다. 그리고 탄탄한 서사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포뇨>에서 좋은 결론이었다고 생각한 부분은 그랑망마레의 결론이었다. 

재난을 일으키고 가출한 딸을 뒤쫓으며 '사랑에 성공하지 못해서, 포뇨가 물거품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하는 아빠가 가장 상식적으로 느껴지는 게 현실이다. 거기에 대답하는 엄마(그랑망마레)의 결론은 의외로 명료하다. '괜찮아요. 우린 모두 물거품에서 태어났는걸요' 

상당 무책임한 결론 같기도 하지만, 인간의 모든 탐욕을 단번에 되돌아보게 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페미니즘과 별개로 그건 늘 지브리가 말해왔던 거니까. 그리고 사랑이 전부가 아님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태도도 좋았다. 포뇨의 미래는 남자아이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물거품은 실패의 조각이나 나쁜 것이 아니라, 그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아니든, 어떤 새로운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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