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내용으로 건너뛰기

지브리와 페미니즘 _ 원령공주


지브리와 페미니즘


http://posty.pe/1hmy6d

위 내용과 이어지는 글입니다


2. 원령공주(The Princess Mononoke, 1997)

_미야자키 하야오


<원령공주>는 무로마치(1338-1573)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극중 주요 무대인 타타라성은 여성 지도자인 에보시가 조정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독자적으로 건설해 다스리는 마을이다. (때문에 중앙정부의 집권이 약화되고 농민반란이 일어나던 15세기 후반 이후의 이야기가 아닐까 추정해본다.) 이야기의 전개는 남자 주인공인 아시타카의 시점으로 시작하나,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전투가 다수 그려지는 이 작품의 주된 축은 여성이다. 500년 전이라는 시차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역동적인 두 인물이 <원령공주>를 이끌어간다.



1. 산(원령공주)

 

숲을 침범한 인간들이 버리고 간 아기였던 '산'을 들개신 모로가 자신의 아이로 키웠다. 이렇게 보면 왜인지 로마 건국사 또는 정글북의 여성버전 정도로 여겨지는데, <원령공주>에서는 그보다 조금은 복잡한 이야기가 관객을 기다린다. 타타라성 주민을 습격하는 산의 첫 등장은, 제목에 붙은 '공주'라는 호칭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던 공주의 의미는 없다는 선전포고로 들려온다. 그 공주의 실체는 우리말 번역으로 그대로 쓰자면 '들개 소녀'다.

신체는 인간이지만 들개의 손에 자라 자신이 들개라고 생각하는 산은 인간을 증오한다. 인간은 문명의 이름 아래 숲을 파괴하고, 무기로 동물(신)들을 위협한다. 산이 스스로 인식하는 정체성은 인간이 아닌 자연이기에, 사실 페미니즘과 직접적으로 묶어내기는 무리수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시타카와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산의 캐릭터는, 기존 헐리웃 무비 클리셰인 '화합-연인'구도를 취하지 않는다. 그 부분은 페미니즘 관점에서 흥미롭게 다룰만한 점이다.



유혈낭자한 싸움과 전투를 거치며 산과 아시타카는 서로에게 몇 번씩 목숨을 빚진다. 산은 숲의 최전방 전사다. 역시 어느 구석에도 여성이라는 프레임은 없다. <원령공주>내 모든 캐릭터는 산을 들개로 인식할 뿐이다. 유일한 여성 프레임을 꼽자면, 아시타카가 타타라에서 산을 구하려 할 때 에보시의 대사다. '들개를 아내로 맞이할 셈이냐?' 때문에 극의 후반에서 아시타카와 산이 함께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의혹도 생기지만, 결국 아시타카는 산에게 결혼하자거나 아내가 되어달라고 하지 않는다. '함께 살아갈 수 있어'라는 애매한 말을 할 뿐인데, <원령공주>에서 함께의 의미는 개인과 개인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을 대신하는 것과 다르지 않고, 미야자키 하야오도 자신의 영역에서 각자 살아가는 그들로 처음부터 이야기를 기획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출발점 도서 참조)



자연에 속한 산에게 아시타카는 마지막까지도 영원한 ‘인간’이다. 그래서 '(친구가 되었으니) 가끔 만나러 올게'가 산에게는 최선의 타협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두 인물이 물리적으로 함께해야 한다면, 산이 숲을 떠나거나 아시타카가 문명을 떠나야 할 것이다. 결국 어느 한쪽이 한쪽에 종속될 것이고, 그것은 주제와 어긋난다. <원령공주>의 결론은 개인의 행복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고 아시타카는 산의 결정을 온전히 존중한다.




2. 에보시


조정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성을 만들어 마을 여성들과 철을 생산하고, 신식 무기(총기)를 만들어내는 타타라성의 지도자 에보시. (이것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설명은 이미 다 된 것 같다. 하하.)

타타라성은 재미있는 곳이다. 남자들은 소몰이를 하거나 곡식을 나르고, 여성들이 뜨거운 제철소 가마에서 철을 생산해낸다. 그 철로 남자들이 외부로 나가 곡식으로 교환해 식량을 조달하는 구조의 마을이다. 에보시는 여성들에게 총기 사용법을 가르치고, 그녀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성을 지키는 역할에 기꺼이 동참한다.



타타라성에 처음 방문한 아시타카는 제철소 여성들에게 일이 힘들지 않냐고 묻는데, 그들의 대답은 명쾌하다. 힘들어도 에보시님 덕에 남자들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타타라성의 여성들은 자신들의 삶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며, 전투에 들어간 제 마을을 스스로 지킨다.

산이 자연의 은유라면, 문명의 은유인 에보시는 당연히 산에게 제거 대상 1순위다. 자연의 권위를 대표하는 사슴신을 잡으러 떠난 싸움에서, 에보시는 한없이 이기적이고 고집스런 인간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그러나 그런 에보시를 관객은 마음 놓고 미워할 수는 없다. 비록 숲의 파괴자라는 갈등을 담당한 그녀와 타타라성이지만 자연보다 문명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오히려 그들의 사정이 더 가까이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타타라성도 결국 하나의 지배(중앙 권력과 남성 중심문화)에서 벗어난 독립된 공동체이며, 사회적 약자들(여성, 나병환자)에게도 각각 역할을 부여하며 동등하게 살아가는 삶은 이미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보다도 더 긍정적인 진보를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이라는 거대한 과제 이전에, 인간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또 하나의 어려운 과제를 다시금 곱씹게 한다. 함께의 의미를. 



-----------------


오래전 써두었던 시리즈인데, 의외로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 다음 내용 업로드했습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kiki 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