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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와 페미니즘 _ 마녀배달부 키키


지브리와 페미니즘

 

그리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지브리 작품들의 다수는 여성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고, 그들은 남성과 가부장의 영향아래 있지 않으며, 스스로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브리 초기작 <마녀배달부 키키, 1989>만 보아도 이미 80년대에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를 (물리적으로) 구해주는’ 이야기를 시도했고, 또한 당시에는 의도조차 없었겠지만 벡델 테스트도 너끈히 통과한다는 사실이 현재의 시점에서도 놀랍게 느껴진다. 그후로 30여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래도 여전히 스토리텔링의 구성원으로 이름을 가진 여성은 적다. 그 비중이 크든 작든, 당연히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지브리 속 여성들이 때때로 그리울 만큼 적기만 하다.

호명(呼名)이라는 단순한 행위가 가진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그리고 지브리의 많은 작품들은 그 이름이 곧 제목이다. 제목은 관객에게 노출되는 가장 첫 번째 메시지이고, 그녀들의 이름이 곧 메시지가 된다. 페미니즘이라는 타이틀을 붙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1. 마녀배달부 키키(Kiki's Delivery Service, 1989)

_ 미야자키 하야오



1. 키키

 

“마녀는 열세 살이 되면 자기가 있을 마을을 찾아 마녀수련을 떠나야 한다.” <마녀배달부 키키>는 냉정한 현실의 이야기다. 하늘을 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재주는 없는 열세 살 미성년자 여자아이가, 그동안 모아놓은 약간의 돈을 가지고(있어야 얼마나 있겠는가) 살던 집을 떠나 낯선 마을에 정착해 새 거처와 일자리를 구해서, 자신의 힘으로만 살아가야 하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다.



떠나겠다고 선전포고를 날린 키키에게 요즘 세상에 가당치도 않은 일이라고 걱정하는 키키 엄마의 반응은 그야말로 당연하다. 하지만 엄마 역시도 열세 살에 이 마을에 정착해 살아가고 있는 마녀이기 때문에, 같은 혈통인 키키를 보내야만 한다는 건 엄마에게도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다. 보통의 부모라면 열세 살 딸이 독립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아무리 그게 운명이라 한들)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은 벌써 독자의 머릿속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마을에서 키키를 보내는 이들은 ‘네가 없다니 섭섭할 거다.’ 아쉬워할 뿐, 키키가 여성이기에 싹틀 걱정과 잔소리는 전무하다. 마녀의 존재여부보다 열세 살 여자아이의 독립을 둘러싼 이들의 반응이 더 비현실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하지만 지브리의 세계에서는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그 세계에서는 여성이라 장애가 되는 일은 없다. 인간이라서 장애가 될 수는 있어도. 많은 신화와 이야기 속에서 운명은 소년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는데, 이곳에서 운명을 등에 지고 떠나는 주인공은 열세 살의 여자아이 키키다.

<마녀배달부 키키>의 클라이막스는 언제나 다시 봐도 굉장하다. 비행선을 탔다가 사고를 당해 하늘에서 줄 하나 잡고 동동 매달려있는 남자친구 톰보를 구하려고 달려가는 키키. 유일한 재주였던 빗자루 타고 하늘을 날기도 슬럼프로 인해 불가능해진 시점에, 심지어 제 빗자루는 부러져 버렸다. 아수라장이 된 도로 한복판에서 키키는 구경나온 행인의 대걸레를 빌려, 톰보를 살려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낯선 대걸레를 날게 한다. 키키는 톰보를 공중에서 구해내고, 다시 나는 법을 알게 되었고, 땅으로 내려와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다.



히어로 역할의 남성이 위기에 처한 조연 여성을 구해내는 프레임에 여전히 익숙한 요즘, 1989년도의 이 클라이막스는 얼마나 대단한 모험이었을까. 말 그대로 극의 대단원이다. 그곳으로 가기 위한 장치의 일부이거나, 이야기가 모두 끝난 후의 에필로그가 아닌. 히어로 무비에서도 흔히 여성이 남성을 돕는 장치들을 사용한다.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그러나 대단원으로서 온전히 여성이 남성의 생명을 구해내는 작품은 얼마나 있었을까 반문해보면, 그 답을 찾기 위해 손가락을 그리 많이 꼽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2. 오소노

 

시골마을을 떠나 대도시로 간 키키는 사람들의 무관심과 차가움, 원칙주의에 금세 기가 죽는다. 그런 키키가 새 도시에 정착하도록 도움을 주는 첫 번째 조력자가 빵집 주인 오소노.

오소노는 만삭의 임산부로 등장한다. 극 안에서 임산부라면 일단 배려 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로 그려지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마녀배달부 키키>에서는 그 부분은 생략한다. 빵집 주인 오소노는 키키에게 다락방의 잠자리와 아침 식사를 제공해주고, 필요할 때 가벼운 조언도 해주는, 인정도 있으나 지극히 상식적인 조력자의 역할을 한다. 커다란 웃음소리와 자신감 넘치는 몸짓과 말투로 가족을 떠나온 미성년자 키키에게 일종의 보호자가 되어준다. (제빵사인 오소노의 남편도 함께 등장하지만 그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빵집 이름이 구초키인 걸로 보아서 성이 구초키일 수는 있겠다.)

가진 옷이 검은 원피스 하나뿐이라서 좋아하는 아이의 파티에 초대받아도 입고 갈 옷이 없다는 키키의 푸념에, 다른 이야기 같았으면 미혼 때 입던 예쁜 드레스를 짠 하고 내어주는 설정으로 가기 십상이었겠지만 오소노는 조금 다르다. ‘지금 네 드레스는 충분히 예뻐, 검은색이 얼마나 여자를 돋보이게 해준다고.’ 오소노는 키키가 자신감을 잃을 때마다 키키의 있는 그대로의 장점을 대면하게 해준다. 키키가 슬럼프에 빠져 날 수 없어 배달 일을 못해 백수가 되었을 때도, 괜찮다고 다시 좋아질 테니 걱정 말고 머무르라고 짧게 격려할 뿐이다. 그 이상의 오지랖으로 키키에게 충고하거나 위로를 건네는 일은 없다. 오소노는 오소노 자신의 삶과 시간을 성실하게 살아가고, 키키 또한 그러기를 바랄 것이다.

 


3. 우슐라


진로 고민과 함께 사춘기에 접어든 키키의 고민은 우리와 다르지 않다. 또래 여자애들보다 수수한 외모에 주눅 들고, 단벌 옷차림에 스트레스 받고, 예쁜 애들을 보면 질투도 나고, 호감을 표하는 남자아이에겐 정작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고, 마녀로서 어떤 재능을 개발해 직업을 삼아 먹고 살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마녀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담겨진 고민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빗자루 타고 하늘을 나는 마녀가 등장하는 이 이야기에서 조차 자본주의는 주요한 장애가 된다.

오소노의 도움으로 집세는 아꼈지만, 수중의 돈으로는 매일 팬케이크만 구워먹고 살아야 할 신세라 키키는 배달 일을 시작한다. 일종의 퀵서비스다. 영업을 하려면 전화가 필요한데, 전화를 놓으려면 돈이 많이 드니 오소노네 양해를 구해 전화는 함께 사용하기로 한다. <마녀배달부 키키>에서는 마녀가 어떤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닌 일과 직업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리고 키키는 이 일이 자신에게 맞는지 아닌지, 스스로의 재능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슬럼프에도 빠진다. 그런 키키가 유일한 재능을 잃고 백수가 되어 좌절의 시간을 보낼 때, 키키의 기분전환을 돕고 위로하는 인물이 우슐라다.

화가인 우슐라는 키키가 첫 배달 일을 할 때 숲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나이 차이도 있지만 친구가 된다. 우슐라는 우울과 두려움의 한복판에 선 키키를 그 공간에서 떼어내 그들이 처음 만났던 자신의 별장으로 데려간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라는 키키의 질문에 대한 우슐라의 대답은 ‘멈춰.’다. 해도, 계속해도 안 된다면 잠시 멈춰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다른 일을 하면, 어느 순간 다시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어쩌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는 키키에게 그다지 힘이 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로 자학하던 키키는 자신이 우슐라에게는 영감을 주는 존재였음을 알게 된다. 우슐라도 포기하려던 그림을 ‘키키가 이렇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내가 타인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는 관계성의 중요함도 지나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해답을 제시한다.

그런데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그 관계성에서 사회적 역할은 철저히 배제했다는 점이다. 극에서 여성 캐릭터는 ‘누군가의 00’이라는 종속적 역할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서는 그 관계성에서 조차 엄격하게‘키키’라는 개인의 형태를 유지한다. (많은 영화에서 편리하게 사용하는 것처럼) 자신의 가치를 누군가와의 혈연, 연인 관계에서 발견하지 않고 그저 그 존재 자체로 말한다. ‘지금 너의 그 고민’이기 때문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 마저도 키키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아닌, 가장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의 그 모습이.

우슐라와의 짧은 휴가는 키키의 수련 생활에 쉼표가 되어준다. 완전히 추락했던 밑바닥에서 대걸레를 타고 다시 도약하기 전, 나는 이대로 나쁘지 않다는 아주 흔한 깨달음을 얻고 키키는 에필로그에서 부모님에게 편지를 쓴다.

나는 잘 지낸다고. 가끔은 힘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다고. 이름을 가진 모든 보통의 인생이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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